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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함께 밥 먹으면서 정이 드는 곳

미국에 처음 와서 청소업을 하던 4년여와 부동산을 처음 시작한 후 10년여 동안 지난번에 소개한 할머니가 잘 싸주기도 하셨지만 나는 도시락을 최소한 5인분씩 싸가지고 다녔으며 많게는 10여명분을 언제나 들고 다녔다. 직원들과 함께 먹기 위해서였다.
점심을 함께 한다는 것은 여간 좋은 일이 아니다. 밥을 먹으면서 정이 드는 것은 동서고금이 같다. 정보도 교환할 수 있고 성격도 알 수 있다. 또 밥을 같이 먹으면서 싸우는 경우는 거의 없다. 그래서 나는 몸이 몇 개라도 모자랄 만큼 바빠진 요즘도 아무리 배가 고파도 밥을 혼자 먹지 않는다. 어릴 때부터 밥을 혼자 먹는다는 것은 요새말로 ‘쪽 팔린다’는 생각을 했기 때문이다.
부동산을 시작하고 초창기 시절, 눈코 뜰 새 없이 바쁠 때도, 차에서 햄버거로 대강 때운 적은 있어도 식당에서 혼자 먹은 적은 없다. 항상 직장동료들이나 직원들이나 손님, 지역사회 유지, 지인들과 함께 먹어왔다. 없으면 굶든지 아니면 기어이 구한다.
또 하나 내가 고집하는 것은 밥값은 내가 낸다는 것이다. 세상을 살면서 90%의 밥값은 내가 내기로 오래전부터 작정했고 그것은 한국이든 미국이든 마찬가지이다. 우선은 경제적인 여유가 밥값 내는 정도는 있는 탓도 있지만 경제적 여유만으로는 되지 않는다. 여기에는 습관적 행동도 있지만 약간의 계산(?)도 포함돼 있다. 자본주의 사회 구조 자체가 밥값 낸 사람이 큰소리 치게 돼 있다. 그러니 내가 사는 밥을 몇 차례든 먹게 된다면 나중에 집을 사거나 팔 일이 생겼을 때 남문기나 우리 뉴스타그룹의 에이전트들을 생각하게 될 것이라는 얘기다.
이처럼 먹는 것에 큰 의미를 부여하는 내가 매년 빼놓지 않고 치르는 행사가 있다. 추석 때 돌리는 배 선물이 바로 그것이다. 나는 추석이 되면 수백 상자의 배를 구입한 후 이를 트럭에 가득 싣고 각 지사를 순회하며 직원들에게 배를 한 박스씩 선물을 하곤 한다. 2004년부터는 무려 800박스의 배 상자를 배달했다. 선물이라는 것이 묘해서 그것이 돈으로 치면 몇 푼 안되는 것일지라도 받는 사람의 입장에서는 여간 즐거운 것이 아니다. 매번 추석 때마다 배 배달용 트럭이 사무실에 도착하면 직원들은 아연 축제 분위기로 돌변한다.
싱싱한 배를 한 입씩 베어 물며 자신들이 뉴스타그룹의 일원임을 확인하는 직원들을 보고 있노라면 내 마음도 즐겁기 한이 없다. 이 좋은 일을 내가 어떻게 그만둘 수 있겠는가. 나는 내년에도, 후년에도 추석만 되면 배 배달원 노릇을 계속할 것이다. 배를 수백 상자씩 싣고 다니며 직원들에게 나눠주는 것은 어느덧 나의 취미가 됐다.
내가 직원들에게 나눠줘서 유난히 즐거운 것이 또 하나 있다. 2003년 이후부터 매년 할리웃 볼(Hollywood Bowl)에서 열린 ‘한인 음악 대축제’의 티켓을 나눠주는 것이 바로 그것이다.
몇몇 해 전부터 이 음악당의 새로운 명물로 떠오른 것이 바로 ‘한인 음악 대축제’이다.
한국일보 미주 본사가 MBC나 SBS 등 한국의 방송국과 공동 주최하는 형식으로 열리며, 한국에서라면 한 자리 한 무대에 세우기 힘든 특 A급의 유명 연예인들이 참석하는 규모다. 캘리포니아 일대 한인들의 관심이 높아 첫 회부터 연거푸 표가 매진되는 사태를 빚었다고 한다.
이 행사가 대단한 것은 단순히 표가 매진됐기 때문만이 아니다. 미국에 이민 온 수많은 민족 가운데 특정한 민족이 할리우드 볼을 통째로 빌려 자신들의 언어로 공연을 한 것 자체가 처음 있는 일이기 때문이다. LA의 한복판이자 영화산업의 중심지인 할리우드 산 중턱에 있는 세계 최대의 야외 공연장이 2만여명에 달하는 한국인들이 흔드는 태극기의 물결로 뒤덮인다는 것은 정말 장관일수밖에 없다.
그런데 바로 그 행사를 미국에 세운 한인 기업으로는 유일하게 뉴스타그룹이 메이저 스폰서로 후원을 했다. 그리고 주최 측에서 메이저 스폰서에게 제공하는 수백 장의 티켓을 우리 뉴스타그룹의 직원들에게 한 장도 빠짐없이 나눠주었다. 매년 350장의 티켓을 나눠주었다. 이 티켓을 나누어주는 즐거움이 얼마나 큰지 모른다. 티켓을 나누어 줄 때 나는 ‘우러러보던 회장님’에서 졸지에 ‘젊은 오빠’로 바뀌고 만다. 평소에는 어렵다는 이유로 나에게 별로 전화하지 않던 젊은 에이전트들이 앞다퉈 전화를 걸어와 ‘회장님, 티켓 남은 것 없나요?’라고 물어올 때면 내가 또 다른 스타나 연예인이 된 기분이 들기도 한다.
나는 앞으로도 이러한 공연이 있을 때마다 재정이 허락한다면 후원을 아끼지 않을 작정이다. 나 자신도 공연장에서 형언할 수 없는 감동을 느꼈지만 공연을 보고 온 직원들이 홈페이지에 올려놓는 감상들이 더욱 나한테 그렇게 하도록 유도하고 있다. ‘내가 한국인임을 새삼 느꼈으며 한국인의 저력이 대단하다는 것을 눈으로 확인했다.’ ‘지난번 다저스 구장에서 스폰서로 자막에 ‘뉴스타부동산’이라고 오를 때도 가슴이 저미는 듯 했는데 이번에 또 보니 정말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며칠간은 사무실이 흥분의 도가니로 꽉차있다. 비용이 얼마나 들든 메이저 스폰서를 맡는 것은 정말 가치 있는 일이라는 생각이 든다.
또 있다. 그 공연을 관람한 뉴스타그룹의 직원들은 모두 ‘그룹의 로고색인 빨간색으로 장식’한 옷을 입고 오거나 등 뒤에 전부 ‘뉴스타부동산’이라고 커다랗게 쓴 재킷을 입고 다니는데, 그게 나로서는 큰 기쁨이자 보람이다. 이것은 이메일을 통해서 내가 연출한 작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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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eo@newstarrealty.com
(213)999-4989
남문기
<뉴스타 부동산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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