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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쪽 팔리는 시대

미술용어 가운데 보색대비라는 것이 있다. 서로 반대되는 속성을 지닌 색채를 나란히 배치시켜 원래의 색깔보다 더 튀어보이게 만드는 기법이다.
즉 빨강과 초록, 노랑과 보라, 파랑과 주황은 보색관계에 있는 색들인데 이들을 나란히 놓으면 원래의 색깔이 더욱 선명하게 보인다는 것이다.
실생활과 연결시켜 설명하자면, 키작은 사람들 사이에 있으면 보통키의 사람도 더 커 보이고, 나쁜 사람들 사이에 있으면 약간 착한 사람도 아주 착해 보인다는 것이다.
요즘 한국과 미주 한인사회에서는 드라마 (야인시대)열풍이 불고 있다. '한국의 마지막 협객'이라 불리는 김두한의 일대기를 그린 것인데 평균 시청률이 50%를 오르내린다고 하니 줄잡아 두 사람 가운데 한 사람은 이드라마를 보는 셈이다.
아직까지는 이렇다 할만한 반전도 없고, 주인공이 누구에게나 이기는 무협소설과 비숫한 이 드라마가 이처럼 인기를 끄는 이유가 무엇일까?
'잃어버린 남성들의 야성을 자극하는 드라마'따위의 서술어들이 많지만 필자가 보기에는 [인간이 살아가는 세상에 꼭 있어야 하는 것인데 요즘은 사라져버린 '그 어떤것']에 대한 그리움이 아닌가 싶다.
그 어떤 것의 첫 번째는 정정당당함이다. 기습을 하거나 무기를 사용하는 따위의 비겁함이 없이 오로지 주먹으로 승부하는 정정당당함이 시청자들로 하여금 청량감을 느끼게 하는 것이다.
두 번째는 결과에 대한 깨끗한 승복이다.
싸움에 지면 두 말 없이 떠나거나(쌍칼, 신마적, 구마적의 경우) 이긴 사람을 오야봉으로 모시는(작두의 경우) 그 단순함과 명쾌함이 시청자들을 시원하게 만든다는 것이다.
세 번째는 의리다. 김두한을 위해 대신 총을 맞는 정진영이나 자기가 보스로 모셨던 구마적이 김두한에게 패하자 중간보스의 자리에서 깨끗이 물러나 낙향을 했던 평양박치기 등이 표본이다.
그런데 야인시대가 더욱 인기를 끄는 이유가 하나 더 있는 듯 하다. 즉 21세기에 실시되는 최초의 한국 대통령 선거를 불과 한달여 앞둔 '바로 오늘'의 세태와 [야인시대]에서 보여주는 '사라진 그 어떤 것들'이 '보색대비' 관계를 이루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최근 몇칠동안 한국 언론에서 가장 자주 거론된 사람은 오장섭이란 사람이다. 한나라당의 전신인 신한국당에서 공천을 받아 국회의원이 됬는데 한나라당이 집권에 실패하자 공동여장인 자민련으로 당적을 옮겼고, 그 덕에 교통부장관까지 올랐던 인물이다.
그런데 한나라당의 집권 가능성이 높아지자 최근 다시 자민련을 탈당, 한나라당에 입당을 친청했는데 한나라당이 '철새는 받아줄수 없다'며 입당을 거부하는 바람에 졸지에 '낙동강 오리알'이 됐고 그러자 언론은 일제히 '철새보다 못한 박쥐'라며 맹공을 퍼붓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필자는 오장섭씨에 대한 한나라당이나 언론의 태도가 매우 부적당하다고 생각한다.
지금까지 철새나 박쥐노릇을 한 사람이 어디 그 한사람뿐인가. 그가 총재로 모셨던 김종필 자민련 총재의 경우, 굴욕적인 변신을 거듭한 결과 무려 3명의 대통령 밑에서 국무총리를 지냈으며 현재 대통령 후보로 출마해 있는 이한동의원도 자신이 총재까지 지냈던 당을 배반하고 탈당까지 하며 국무총리 자리에 남았던 사람이 아닌가
386세대라고 해서 하나도 다를 것이 없다. '젊은 세대의 희망'으로 까지 불렸던 김민석 전의원 같은 사람도 자신을 서울시장 후보로까지 뽑아준 당을 탈당해 엉뚱한 곳에 둥지를 틀고 앉지 않았는가
정계만 그런 것이 아니다. 한 그룹에서 회장의 직함에까지 올랐던 사람이 불과 얼마전까지 자신이 왕자로 모셨던 사람의 등 뒤에다 칼을 들이댄, 정몽준과 이익치의 관계는 또 어떤가.
일일이 이런 사례를 열거하자면 이 칼럼을 꽉채워도 칸이 모자랄 지경이며 결국 요즘 한국의 지도층 사회에는 정정당당함이나 결과에 대한 깨끗한 승복, 키워준 사람에 대한 신의 따위는 온데 간데 없고 오로지 목전의 이익만을 위한 배신과 야합만이 판을 치고 있다는 것이다.
[야인시대]와 빗대 말한다면 신마적이나 구마적은 커녕 평양박치기 정도의 인품을 가진 사람도 보기 드물고, 주먹이 안되면 총을 들고 달려들고, 총도 안되면 적장(하야시)에게 달려가 몸을 의탁하려는 왕발같은 사람들만이 득시글거리는 것이 작금의 현실이라는 것이다.
필자가 두려워하는 것은 이런 사태가 연출하는 최종적인 결과다. 이런 풍조가 만연하게 되면 '머리 검은 짐승은 거둘것이 못된다'는 그 참담한 말이 오히려 진실처럼 들리게 된다는 것이다.
인간이 살아가고 있는 사회에는 차마 할 수는 없는 일, 즉 최소한의 금도가 있어야 하는데 [야인시대]에 앞서 한국인들을 흥분시켰던 영화 [친구'의 한 장면이 그것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친구인 동수(장동건)의 살해를 사주했다는 혐으로 붙잡힌 준석(유오성)은 충분히 무죄주장을 할 수 있는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순순히 유죄임을 시인한다.
그리고 그 후 자신을 면회온 또 다른 친구 상택(서재화)이 눈물을 흘리며 "준석아, 네가 안그런가 다 아는데 왜 그렇게 대답했어?"라고 묻자 이렇게 대답한다 "쪽팔리쟎아, 동수도 나도 다 건달인데, 건달이 쪽팔리게 살면 안되쟎아"라고
혐객은커녕 건달들도 쪽팔리는 것을 아는데 지도자랍시며 쪽팔리는 것조차 모르는 사람들의 속내가 궁금하다.


타운뉴스 발행인 겸 편집인
박영규




지도자를 평가하는 기준
펜과 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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