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해년 새해 복 많이 받으십시오!
누워 잠든 여인의 산
그 가슴을 더듬어 오를 때
첫 눈이 내린다
바람 소리 기도 소리
하나 되어 모이는 곳
하얀 사슴의 심연(深淵)
그 곳에 나의 함성을 던진다
전류처럼 흐르는 충격
멀리 천지(天池)의 물결로 일렁이면
오, 이제는 일어서
거친 파도를 타고 대지를 향할 때
분단은 녹아 생명이 되리니
나는 2006년이 가기 전 꼭 한라산 정상 백록담을 오르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12월 초 토요일 아침 첫 비행기를 타고 제주에 가서 동지들과 함께 산행을 시작했습니다. 성판악에서 출발하여 오르는 거리만 무려 9.8km였습니다.
매우 완만하여 힘이 들진 않았지만 때마침 세찬 바람과 함께 첫 눈이 내려 앞이 잘 보이지 않았습니다. 제주 토박이 동지 한 사람이 말하기를 한라산은 여인이 누워 잠자는 모습 그대로라는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험한 날씨인데도 산을 오르고 내렸습니다. 그들 모두 간절한 소망을 안고 기도하며 발걸음을 옮기리라 믿었습니다. 그렇게 네 시간을 오르니 마침내 정상이었습니다. 그러나 바람은 더욱 거세게 불어 백록담이 보이기는커녕 백록담을 향해 서 있기도 어려웠습니다.
나는 눈보라로 깊은 심연(深淵)을 이룬 하얀 사슴의 연못, 백록담을 향해 소리를 쳤습니다. 있는 힘을 다해 목소리로, 가진 정성을 다해 마음으로, 우리의 소원을 이루어달라고 기원했습니다.
그 때 가슴이 뭉클하더니 10년 전 가 보았던 백두산 천지가 마음속으로 다가 왔습니다. 바로 저 바다 건너에 있는 것처럼 아주 가까이 느껴지며 천지의 물결이 파동치고 있었습니다. 우리 민족의 성산(聖山) 백두산, 그리고 푸르다 못해 검게 보이는 천지의 물! 그 물은 흘러 고인 물이 아니라 거의 전부가 대지에서 용출(湧出)하는 생기(生氣) 그 자체였습니다.
나는 용솟음치는 하늘과 대지의 기운에 사로잡혀 한동안 눈을 감고 있었습니다. 또 몇 년 전 가보았던 시베리아의 바이칼 호수가 보였습니다. 우리 민족은 몽골리안의 한 분파라고 하는데, 원래 몽골리안은 그 바이칼 호수에서 발원했다고 합니다. 실제 그 곳을 가보니 주변에 모두 몽골족이 살고 있었습니다. 브리야트몽골자치공화국 수도 울란우데가 바이칼 호수 주변에 있습니다.
나는 참으로 큰 영감(靈感)에 사로잡혔습니다. 여기가 바로 우리 조상들이 문명을 시작한 땅이라니!
우리가 왜 바이칼을 잊고 살았는지 정말 바보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나의 눈에는 백록담으로부터 천지 그리고 바이칼이 일직선으로 보였습니다. 어쩌면 우리민족의 터전을 빚은 여인 한라산이 평화의 바다를 건너 이 곳 제주도에 깊이 잠들어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상상에 사로잡혔습니다. 그리고 백록담에서 뿜어져 나오는 바람소리가 잠든 여인의 숨소리로 여겨졌습니다.
나는 이 여인이 이제 잠에서 깨어 다시 바다를 건너고 백두산을 거쳐 바이칼로 가기를 소망했습니다. 우리가 사는 터전을 빚어낸 여인이 분단으로 고통 받는 땅에 생기(生氣)를 불어넣으면 얼마나 좋을까를 꿈꾸었습니다. 그것은 곧 통일일 것이기 때문입니다.
앞머리의 시(詩)는 한라산을 다녀온 후 내가 쓴 것입니다. 중학교 때 시를 써보고는 그 동안 한 번도 시작(詩作)을 해본 일이 없었는데, 이 번 한라산을 오르내리며 너무 많은 영감을 느껴 용기를 내서 시도해보았습니다.
나는 원래 문학을 좋아하였습니다. 사실 문학을 좋아하지 않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입니다. 우리는 모두 생명을 태우며 자신이 아름답다고 믿는 가치를 위해 하루하루를 살아갑니다. 그렇게 보면 우리의 삶은 사실 온몸으로 쓰는 문학임에 틀림이 없습니다. 이 시에는 제목이 없습니다. 제법 시 같다고 생각되면 그 제목을 붙이는 것은 독자의 몫으로 남겨두고 싶습니다.
올 정해(丁亥)년은 60년 만의 붉은 돼지 해이자, 600년 만의 황금돼지 해라고 합니다. 우리 모두 건강하고 뜻한 일들이 이루어지는 축복의 한 해가 되기를 두 손 모아 기도합니다. 또 분단이 녹아내리면서 고통 받는 사람들에게 생명과 평화가 넘쳐나기를 한라(漢拏)와 백두(白頭)의 이름으로 빌어 봅니다.
저의 작은 공간에서 함께 희망을 키우는 모든 분들에게 신의 가호가 늘 함께 하기를!
2007. 1. 7
이 인 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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