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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신 잡는 해병’ 건강하고 튀고 멋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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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병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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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06-13 18:02:24, 조회 : 26,920 |
‘귀신 잡는 해병’ 건강하고 튀고 멋있어요
신세대 젊은이들, 앞다퉈 해병대 지원… 1000기 배출 눈앞에
병역의무를 피하기 위해 국적을 포기하려는 이들로 출입국관리사무소가 붐비고 있는 때, 김우겸(21)씨는 수원지방병무청에 8번째 들렀다. 해병대 지원서를 작성하기 위해서다. 김씨는 2003년 10월 해병대에 처음 지원한 것을 시작으로 올 2월까지 7차례 떨어졌다. 처음 지원했을 때 면접에서 합격했다면 벌써 제대를 7개월 정도 남겨둘 시점이다.
“먼저 해병대에 간 친구들이 상병 달고 병장 되어서 휴가 나올 때면 속이 쓰리기도 하지만 제가 좋아서 선택한 것이기 때문에 후회는 없어요. 자진해서 간다고 하는데도 안받아주니까 오히려 오기가 생기더라고요.”
▲ 포항 교육훈련단에서 신병들이 각개전투 훈련을 받고 있다. / 사진 최명준
김씨는 지난 1월에는 면접에 합격한 후 4월에 머리까지 깎고 포항 훈련소에 입소했었다. 그러나 가입소 기간 동안 실시되는 정밀 신체검사에서 폐렴 증상이 보여 귀향조치당했다. 얼굴이 익은 면접관들은 “경쟁률이 낮은 특기병과에 지원하라”고 따로 전화를 하여 귀띔해주기도 했다.
이하늘(20)씨 역시 작년 2월부터 6차례 면접에서 떨어져 이번 달에 7번째 해병대 지원을 했다. “6번째 떨어진 뒤 ‘내가 정말 못났구나’라고 생각하면서도 나도 모르게 병무청에 가게 되더라”는 이씨는 해병대에 가기 위해 스킨스쿠버 자격증, 합기도 1단, 양식조리 기능사 자격증을 땄다. 각종 자격증이 있으면 가산점이 붙어 유리하기 때문이다. 조금 뚱뚱한 편인 이씨는 요즘 강화된 체력검사에 대비해 윗몸일으키기와 팔굽혀펴기 등의 운동을 열심히 하고 있다. “벌써 지원한 것만으로도 가산점 7점이에요. 3번만 더 지원하면 10점인데 그때는 정말 붙을 수 있겠죠!”
‘누구나 해병이 될 수 있다면 나는 결코 해병대를 선택하지 않았을 것이다’는 해병대 격언을 절감하고 있다는 이들 젊은이는 “해병대에는 뭔가 특별한 것이 있어 끌린다”며 입을 모은다.
해병대 측에 따르면 2004년도 해병대 병(兵)경쟁률은 연평균 3.5 대 1이었고 휴ㆍ복학 시기와 겹치는 12월에서 2월 말까지는 보통 5 대 1까지 높아진다고 한다. 사령부(경기도 화성시 소재)가 위치한 수원 근처의 지원율이 가장 높고 영동 지역이 가장 낮다. 해병대의 한 관계자는 “1993년 이전까지는 해병대가 타군에 비해 복무기간이 6개월 정도 짧았다”며 해병대의 높은 지원율은 1970년대부터 계속 이어져온 것이라고 밝혔다.
서울 모병관실의 현대인 원사는 “면접시 국어 영어 국사의 고교성적과 출결사항, 봉사활동 내역, 체력테스트가 중요하다”며 “요즘은 상위권의 명문대 학생도 상당수 지원하는데 체력테스트에서 떨어지는 경우가 많이 있다”고 설명했다. 이는 지난 10월부터 사령관 특별지시로 한층 강화된 체력 검정기준 때문이다. 2분 안에 윗몸일으키기 82개, 팔굽혀펴기 72개를 해야 만점을 받을 수 있다. 고교성적과 출석부를 점수에 반영하는 것은 조직생활에 잘 적응할 수 있는지의 여부를 성실성을 보고 판단하기 위해서다. 한 번 지원할 때마다 가산점 1점을 주는 것도 그 의지를 높게 평가하기 때문이다.
“옛날식으로 깡다구만 있던 해병대가 아닙니다. 사회에 필요한 완제품을 만들어서 내보내려고 노력 중이에요. 해병대에는 혈기왕성한 젊은 사람이 한번 부딪쳐보고 싶은 것이 모두 있다고 생각합니다. 절대 후회하지 않아요. 제 아들도 해병대 장교로 복무 중입니다.”(현대인 원사)
지난 5월 7일 오후 9시48분 무렵, 서울 광화문의 이순신 장군 동상 앞에 일대 혼란이 빚어졌다. 색색깔의 휘장으로 화려하게 치장한 전투복 차림의 948기 해병대원들이 전역신고를 하기 위해 광화문 앞으로 운집한 것이다. 전역하는 날 전국 각지의 해병 동기들이 광화문에 모여 전역신고를 하는 것은 알게 모르게 내려온 해병대의 오랜 전통이다. 보통 한 기수의 해병은 400명 안팎. 이날 모인 100여명의 해병은 이순신 장군 동상에 전역신고를 하고 군가를 부른 뒤 전역식을 마쳤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무단횡단을 하고 적지 않은 소음을 유발해 일부 시민의 눈살을 찌푸리게 했다. 한 포털 사이트에서는 이 일과 관련된 기사에 5800개가 넘는 댓글이 달리며 해병대에 대한 뜨거운 찬반 열기를 보여줬다. 적지 않은 네티즌이 ‘개병대’ 운운하며 그동안 해병대를 바라보던 사회 일각의 불편한 심기를 대변한 반면, 대부분의 예비역 해병들은 “사회에 피해를 주지 않는 한에서 해병대만의 전통을 인정하고 이어가야 한다”고 주장해 해병대 특유의 유대의식을 드러냈다.
우리 사회에서 오랫동안 해병대는 타군과 비교되는 독특함 때문에 단순히 군 조직의 하나라는 인식을 뛰어넘어 세인의 관심을 받아온 것이 사실이다. 섀미 워커와 팔각모, 빨간 명찰과 ‘상륙돌격형’ 머리 스타일, 강한 훈련에서 비롯되는 끈끈한 유대감과 구성원 모두가 지원자로 이루어지는 점 등은 해병대 하면 떠오르는 이미지들이다.
경쟁률 3.5~5 대 1
▲ 정찰모를 쓴 해병의 칼날 같은 눈빛. 정찰모는 보병 및 수색대가 지상에서 정찰을 할 때 주로 쓰는 모자다. / 사진 최명준
남자들이 만나서 “자네 군대는 갔다왔나?” “예, 해병대 갔다왔습니다!”로 대화가 이어지면 이후의 분위기는 굳이 해병대 출신이 아닌 사람이라도 쉽게 짐작할 수 있다. 놀라는 표정과 함께 ‘이 친구, 다시 한 번 봐야겠다’는 듯한 눈빛이 나타나는 것은 지난 56년 동안 ‘해병대’라는 세 글자가 만들어낸 공든 탑의 산물이다.
해병대는 여순반란사건 이후 특수부대의 필요성을 절감한 해군 수뇌부에 의해 해군신병 13기 중에서 차출한 303명을 근간으로 1949년 4월 15일 창설되었다. 그들이 곧 해병대 1기인 셈이다. 오는 6월 21일 입소하는 신병(8월 6일 훈련소 수료 예정)을 기점으로 해병대 기수는 드디어 1000기가 된다. 한국전쟁, 월남전에서 무수한 전과를 올리며 ‘귀신 잡는 해병’ ‘신화를 남긴 해병’ ‘무적해병’ 등의 찬란한 영광을 만든 해병의 전통이 2005년의 신세대 해병에 의해 이어지고 있다.
“자기 정체성 찾으려는 노력”
윤정남(24)씨는 언니만 6명 있는 딸 부잣집의 막내딸이다. 그는 서원대 윤리교육과를 졸업하고 중등 임용고시로 이미 교사자격증을 취득한 상태에서 해병대 부사관에 지원했다. 2003년부터 해병대에서는 여부사관을 뽑고 있다.
“부모님께 훈련소에서 자식을 배웅하며 눈물 흘리는 경험을 선사하고 싶었다”며 장난스럽게 말하는 윤씨는 교사임용에서 나이 제한이 없어지자 오래 전부터의 꿈이었던 여군에 지원할 생각을 했다고 말했다. “부사관 쪽은 나이제한이 있기 때문에 지금이 적기”라는 설명도 덧붙였다.
“해병대 안에서 남자들과 어울려 생활하다 보면 분명 배우는 게 많을 거라고 생각해요. 해병대는 ‘악’과 ‘깡’이라고도 하는데 사람을 변화시키는 그 특유의 정신이 정말 매력적이에요.” 남자도 받기 힘든 훈련을 이겨낼 자신이 있느냐고 묻자 “차별이 아닌 차이를 인정하는 범위 안에서는 충분히 해낼 수 있을 만큼의 끈기를 가지고 있다”고 자신했다.
스스로 “인간개조의 용광로를 통과했다”고 말하는 박기수(가명·25)씨는 2004년에 해병대를 제대한 예비역 병장이다. 홍익대학교 신소재학과에 다니던 박씨의 대학 평점은 4.5점 만점에 2점대 초반. 하지만 해병대 전역 후 악과 끈기만 가지고 시험기간에 집에도 안들어가고 공부만 한 결과 올해 연세대학교 편입시험에 합격하여 신소재공학과 03학번이 되었다. 보통의 편입생이 선후배 관계가 소원해 조용히 학교를 다니는 편인 반면 박씨는 학과 내 해병대 선후배들과 뭉치며 거리감을 느끼지 않고 심적으로 편안하게 학교 생활을 하고 있다.
“해병대에서 배운 가장 값진 성과는 끈기와 노력이에요. 해병대에서는 불가능한 것이 없죠. 또 워낙 내무실 생활이 힘들기 때문에 해병대에서 선임(고참)들을 대했던 것의 반만큼만 해도 사회에선 정말 깍듯이 한다고 대접받아요. 인간관계 맺는 것 하나만큼은 확실히 배워왔습니다.”
▲ 해병대 기습특공대원들이 IBS보트를 탄 채 파도를 가르고 있다. / 조선일보 DB사진
연세대학교를 비롯하여 고려대, 중앙대, 성균관대, 홍익대, 한국외대, 단국대학교 등 전국의 많은 대학에는 해병전우회가 있다. 이들은 학교 주변의 교통정리부터 축제 같은 큰 행사까지 자진해서 봉사활동을 하며 군대가 아닌 학교에서 전우애를 계속 쌓아가고 있다.
신세대들이 해병대로 몰리는 이유는 무엇일까? 국방대학교 이상목 교수(경제학)는 복잡다단한 현대사회에 자기 정체성을 찾으려는 신세대의 심리에서 원인을 찾을 수 있다고 설명한다. “‘한번 해병은 영원한 해병’이라는 유명한 말도 있듯이 자기 정체성을 가지고 어떠한 집단에 속하려는 욕구가 해병대 지원으로 표출된다고 생각합니다. 해병대는 특유의 독특한 정체성으로 제대 후에도 자기표현을 하는 데 도움이 되는 집단이기 때문이죠.”
이해관계를 따지는 신세대에게 군대 경험의 정체성을 살릴 수 있는 심벌이 가장 많고 그 욕구를 충족시킬 수 있는 가장 독특한 집단이 해병대라는 것이다. 이 교수는 “자기표현 욕구가 강하고 개성이 뚜렷한 신세대에게 외관상 타군과 차별되는 해병대야말로 멋있는 조직으로 어필하는 측면이 크다”고 덧붙였다.
해병대는 제주도나 도서 지역의 상근 예비역을 제외하면 전원 지원자로 이루어진다. 과거에는 서울, 인천, 대구, 경북, 제주 지역 징병 대상자를 대상으로 무작위로 ‘해병 입대’를 통보한 ‘징병기수’가 있었지만 ‘울며 겨자먹기’식의 입대자는 점차 줄어들어 2003년부터 전원 지원제가 됐다.
해병대는 한 달에 2기수씩 뽑으며 지원한 달로부터 3개월 후에 입대하는 것은 타군과 같다. 면접이 특히 까다로운데 고교성적, 출결사항, 봉사활동과 학력·체력 점수가 합해져 합격 여부를 가린다. 한 기수에 보통 450명 정도 뽑으며 이 중 50여명 정도는 5박6일간의 가입소 기간 동안 자진 혹은 강제로 귀향조치 당한다. 이유는 정밀 신체검사에서 드러난 질병이나 체력테스트에 미달되는 경우, 그리고 훈련병 자신의 판단 때문이다. 타군 훈련소의 경우 병장인 조교 밑에서 훈련받을 수도 있지만 해병대는 전원 부사관들로 이뤄진 DI(Drill Instructor·훈련교관)한테 신병 훈련을 받게 된다. 신병보다 더욱 가혹한 훈련을 거친 DI들은 가입소 기간 동안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으니 돌아가고 싶으면 돌아가라”고 윽박지르며 정예 해병을 선별해낸다.
주간조선 5월 30일 1856호
정장열 주간조선 기자(jrchung@chosun.com)
*본 기사 작성에는 박국희 인턴기자(freshman1828@hanmail.net)가 참여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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